문화일반
불탄 서까래와 폐전봇대, 예술이 된 잔해들
2026-08-07 13:44
전시장 공중에 매달린 거대한 폐전봇대는 한때 정보와 에너지를 실어 나르던 문명의 도구였으나, 이제는 기능을 상실한 채 잔해로 남았다. 김결수 작가는 이 버려진 인공 구조물을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문명의 종말과 새로운 생명의 시작을 동시에 보여준다. 전봇대 끝단에 삐져나온 철근 뭉치는 마치 나무의 뿌리나 가지처럼 보이는데, 이는 인간이 만든 인공물조차 결국 자연의 유기적인 형상을 닮아간다는 작가의 통찰을 담고 있다. 작가는 죽은 구조물에서 생명의 형태를 발견함으로써 인간 문명이 거대한 자연의 순환 속으로 회귀하는 과정을 암시한다.작품의 핵심을 관통하는 또 다른 요소는 전봇대 중심부에 자리 잡은 실제 식물 군락이다. 가장 낮은 곳에서 싹을 틔운 이 식물들은 전시 기간 내내 성장하고 변화하며 작품에 시간성을 부여한다. 고정된 조각품이 아니라 끊임없이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생명의 리듬을 공간 속에 구현한 것이다. 관람객들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식물의 모습을 통해 작품을 완결된 물체가 아닌 살아 움직이는 하나의 현상으로 마주하게 된다. 이는 소비하고 버리는 것에 익숙한 현대 사회에 순환의 윤리를 다시금 일깨우는 장치가 된다.

전시장 한편에는 화마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불탄 서까래가 놓여 있다. 작가는 실제 화재로 소실된 가옥에서 천장을 지탱하던 나무를 가져와 작업의 소재로 삼았다. 검게 그을린 나무는 과거의 기억과 상처를 증언하는 동시에, 재 속에서 다시 피어날 생성의 가능성을 내포한다. 가공되지 않은 채 드러난 탄 흔적은 산업화가 남긴 폐기물이 단순한 쓰레기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온 시대의 초상임을 웅변한다. 작가는 버려진 사물들을 생명의 질서 속으로 다시 편입시키며 문명의 잔해에 새로운 존재 가치를 부여한다.
벽면을 채우는 영상 작업은 집의 형상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과정을 반복하며 소멸과 생성의 주제를 심화시킨다. 작가에게 집은 가족의 추억과 인간의 희로애락이 켜켜이 쌓인 원형적인 공간이다. 영상 속에서 끊임없이 변주되는 집의 형태는 관람객 개개인이 간직한 마음속 고향이나 기억의 장소를 소환한다. 한국적인 정서가 짙게 배어 있는 이 작업은 설치 작품들이 가진 거친 질감과 대비를 이루며, 보이지 않는 기억의 층위를 시각적으로 풀어낸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오랫동안 천착해온 '노동과 효과성(Labor&Effectiveness)'이라는 주제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예술이 경제적 논리 앞에서 무용하다는 평가를 받을 때, 작가는 거대한 전봇대와 무거운 고목을 전시장으로 옮겨오는 고된 노동을 통해 예술의 존재 이유를 묻는다.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것을 넘어, 낡고 소외된 것에 예술가의 철학을 입히는 행위 자체에 집중해달라는 것이 작가의 당부다. 폭염 속에서도 멈추지 않은 그의 작업 의지는 전시장 곳곳에서 강렬한 에너지로 뿜어져 나온다.
김결수 작가는 지난해 조지아 트빌리시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와 베니스 비엔날레 특별전 등 굵직한 국제 무대에서 한국 현대미술의 위상을 높여왔다.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작가의 시선은 이제 대구 방천시장의 작은 갤러리에서 우리 사회의 버려진 것들을 보듬고 있다. 전시는 오는 15일까지 대구 중구 달구벌대로에 위치한 갤러리 문101에서 관람객을 맞이한다. 문명의 잔해에서 생명의 경이로움을 발견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번 전시는 묵직한 울림과 성찰의 시간을 선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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