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사회

골목길 '♨' 마크는 왜 우리 곁을 떠났을까

2026-04-24 19:34
 과거 동네 골목 어귀에서 가장 웅장한 자태를 뽐내던 건물은 단연 대중목욕탕이었다. 남탕과 여탕을 분리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복층 구조를 갖추고 높다란 굴뚝까지 세워야 했던 목욕탕은 지역 사회의 상징적인 장소였다. 각 가정에 온수 시설이 제대로 보급되지 않았던 시절, 주말마다 온 가족이 함께 목욕 바구니를 들고 나서는 풍경은 흔하고 정겨운 일상이었다.

 

하지만 주거 환경이 현대화되고 집집마다 훌륭한 욕실이 생겨나면서 동네 목욕탕은 급격한 쇠퇴기를 맞이했다. 특히 전염병 대유행 시기를 거치며 강력한 방역 조치가 시행되자 전국적으로 천 곳에 가까운 업소들이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줄지어 문을 닫았다. 현재는 도심 요지에 자리 잡은 초대형 찜질방이나 사우나 시설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동네 목욕탕의 연쇄 폐업은 지역 사회의 취약 계층에게 예상치 못한 생활의 불편을 초래하고 있다. 집 근처에서 씻을 공간을 잃어버린 노인들을 위해 강원도의 일부 지자체는 세금을 들여 직접 공공 목욕 시설을 건립하기도 했다. 서울시 역시 취약 계층의 위생 관리를 돕고 혹서기와 혹한기 쉼터를 제공하기 위한 전용 목욕탕 지원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줄도산의 위기 속에서도 폐업한 목욕탕 건물을 새로운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도시 재생 시도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넓은 내부 공간과 과거의 탕, 타일 장식 등 독특한 건축 요소를 그대로 살려 세련된 카페나 베이커리, 복합 전시관으로 개조하는 방식이다. 이는 복고풍을 선호하는 젊은 세대의 취향을 저격하며 구도심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건물의 변신과 더불어 과거 골목길을 밝히던 친숙한 목욕탕 기호 역시 점차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정부가 온천 관련 법령을 개정하면서 일제강점기부터 백 년 가까이 널리 쓰이던 기존 로고의 사용을 제한하고 새로운 공식 마크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국가로부터 정식 허가를 받은 천연 온천 시설만이 엄격한 기준 아래 해당 표식을 사용할 수 있다.

 

다만 정부가 법 개정 이전에 설치된 간판들까지 강제로 철거하는 소급 적용을 강행하지는 않았다. 그 덕분에 아직 재개발의 손길이 닿지 않은 오래된 골목길이나 변두리 지역을 걷다 보면 낡은 간판에 새겨진 옛 기호를 드물게 발견할 수 있다. 이는 한때 동네 사람들의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했던 대중목욕탕의 찬란했던 과거를 묵묵히 증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