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600만 학살한 나치는 왜 스스로 무죄라고 믿었을까?

2026-03-13 17:55
 인류 역사상 가장 체계적인 증오와 학살을 자행했던 나치, 그들의 광기 어린 악의 실체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최근 출간된 ‘뉘른베르크, 나치와 정신과 의사’는 이 해묵은 질문에 대해 한 정신과 의사의 기록을 통해 섬뜩한 해답을 제시한다. 영화 ‘뉘른베르크’의 원작이기도 한 이 책은, 악이 특별한 괴물의 형상이 아님을 증명한다.

 

책의 무대는 2차 세계대전 직후 열린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정이다. 주인공인 미 육군 군의관 더글러스 M. 켈리는 헤르만 괴링을 비롯한 22명의 나치 최고위층 전범들이 재판을 받을 만한 정신 상태인지를 감별하는 임무를 맡는다. 하지만 그는 공식 임무를 넘어, 그들에게서 ‘나치 유형’이라는 공통된 정신병리학적 결함을 찾아내 미래의 독재자를 막으려는 개인적인 야심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켈리의 야심 찬 시도는 예상치 못한 벽에 부딪혔다. 수백만 명을 가스실로 보낸 명령을 내린 전범들에게서는 그 어떤 공통적인 정신이상 징후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들은 사이코패스나 괴물이 아닌, 지극히 ‘정상’의 범주에 속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항변했지만, 켈리가 깊숙이 들여다본 내면은 전혀 다른 진실을 가리키고 있었다.

 

특히 히틀러의 2인자였던 괴링은 사악하고 뒤틀린 인물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그는 뛰어난 지성과 유머, 사람을 끄는 카리스마까지 갖춘 인물이었다. 켈리는 이들과의 심층 면담을 통해, 그들이 단순히 명령을 따른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출세와 야망을 위해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권력을 탐했던 인물들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들은 냉혹한 사업가나 야심 찬 정치가와 다를 바 없었다.

 


결국 그들이 가진 공통점은 ‘권력 중독’과 ‘극단적 자기중심성’이었다.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라면 도덕이나 양심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타인을 지배하고 해치는 것을 서슴지 않았다. 책은 이러한 성향이 특정 시대나 집단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 사회를 포함해 언제 어디서든 발현될 수 있는 인간의 보편적인 어두운 단면임을 경고한다.

 

이 책이 던지는 가장 소름 끼치는 진실은 주인공 켈리 자신의 삶을 통해 완성된다. 그는 재판이 끝난 후, 자신이 분석했던 괴링의 오만함과 주변을 조종하려는 성향을 그대로 닮아갔고, 결국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한 채 파국을 맞이했다. 악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의 평범한 얼굴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의 삶이 비극적으로 증명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