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170편의 얼굴로 한국영화의 역사가 된 배우, 안성기
2026-01-05 14:18
단순한 별의 추락이 아니다. 한국 영화의 역사 그 자체였던 거목, 배우 안성기가 5일 우리 곁을 떠났다. 1957년, 5세의 나이로 카메라 앞에 선 이래 170여 편의 작품을 남긴 그의 필모그래피는 단순한 숫자를 넘어 한국 현대사와 영화 산업의 영욕을 온몸으로 관통해 온 거대한 서사다. 아역 배우가 성인 연기자로 성공한 전례가 거의 없던 척박한 환경에서, 그는 1970년대의 암흑기를 지나 80년대 '코리안 뉴웨이브'의 심장으로, 90년대 기획 영화 시대를 거쳐 2000년대 천만 영화 시대의 주역으로, 단 한 번의 단절 없이 스크린을 지켰다. 한국 영화의 역사는 안성기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평가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그를 '국민 배우'의 반열에 올린 것은 단연 1980년대였다. 군사정권의 서슬 퍼런 압제가 사회를 짓누르던 시절, 그는 이장호, 배창호 감독 등 당대 최고의 거장들과 손잡고 시대의 억눌린 자화상을 스크린에 새겨 넣었다. '바람 불어 좋은 날'의 어수룩한 중국집 배달부, '고래사냥'의 초라한 노숙자, '칠수와 만수'의 희망 없는 간판장이까지, 그가 연기한 인물들은 하나같이 가난하고 소외되었지만, 그들의 눈빛에는 시대의 모순을 꿰뚫는 서늘한 진실과 인간에 대한 연민이 담겨 있었다. 배창호 감독이 "그의 얼굴에는 우리가 겪었던 가난과 슬픔, 그럼에도 잃지 않았던 희망이 동시에 묻어난다"고 회고했듯, 그는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시대의 풍경이 되어 카메라 앞에 섰다.

시대가 변하자 안성기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유연함으로 자신의 스펙트럼을 넓혔다. 1990년대 '투캅스'에서는 비리 형사 역을 맡아 코믹 연기의 정점을 선보이며 대중과 호흡했고, 2000년대에는 '실미도'와 '라디오 스타'를 통해 천만 관객의 심금을 울리는 묵직한 감동을 선사했다. 이 모든 변신을 가능케 한 동력은 화려한 스타성이 아닌, 배우라는 직업에 대한 숭고한 철학이었다. 그는 생전 인터뷰에서 "주름이 늘면 느는 대로, 흰머리가 나면 나는 대로 관객과 함께 늙어가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안성기는 세월의 흔적마저 연기의 일부로 끌어안으며 마지막 순간까지 현역 배우로 살고자 했던 진정한 장인이었다.
스크린 밖에서의 안성기는 영화계 전체를 아우르는 '진짜 어른'이자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배우 박중훈이 "안성기 선배님은 화려한 조명 아래서도 단 한 번도 거만해진 적이 없었고, 언제나 후배들에게 자신을 낮췄던 우리 모두의 '큰형님'"이라고 회고했듯, 그의 인품은 수많은 영화인에게 귀감이 되었다.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투쟁의 최전선에 서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고, 영화인들의 복지와 권익을 위해 궂은일을 도맡았던 그의 삶은 스크린 안팎에서 일치했다. 비록 거목은 쓰러졌지만, "현장으로 돌아가겠다"는 마지막 의지까지 불태웠던 그의 170개 얼굴은 한국 영화라는 이름 아래 영원히 빛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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