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백 지고 립스틱 떴다…로레알, LVMH 제쳤다
루이비통·디올·펜디 등을 거느린 세계 최대 명품그룹 LVMH가 프랑스 증시 정상에서 밀려났다. 새 주인공은 글로벌 화장품 기업 로레알이다. 코로나19 이후 명품 소비를 이끌었던 ‘보복 소비’가 꺾이고, 중국 경기 둔화와 중동 지역 불안까지 겹치면서 고가 명품 기업의 주가가 크게 흔들린 결과다.16일 글로벌 금융정보업체 LSEG에 따르면 이날 종가 기준 로레알의 시가총액은 2030억유로로 집계됐다. LVMH는 2010억유로에 그치며 근소한 차이로 로레알에 뒤졌다. LVMH가 프랑스 증시 시총 1위 자리를 내준 것은 2017년 이후 처음이다.주가 흐름은 더 극명하다. 올해 들어 로레알 주가는 약 5% 상승했지만, LVMH 주가는 35% 넘게 빠졌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유럽 기업 최초로 시가총액 5000억달러를 돌파하며 ‘명품 제국’의 위상을 과시했던 LVMH로서는 급격한 분위기 반전이다. 연이은 주가 부진으로 LVMH는 유럽 시가총액 상위 10대 기업 명단에서도 빠졌다.LVMH의 부진은 명품 시장 전반의 냉각과 맞물려 있다. 팬데믹 기간 동안 억눌렸던 소비가 폭발하면서 고가 가방과 의류, 시계 판매가 크게 늘었지만, 인플레이션과 경기 둔화가 길어지자 소비자들의 지갑은 다시 닫히기 시작했다. 고가 명품은 가장 먼저 구매를 미루는 품목이 됐다.특히 중국 시장의 변화가 결정적이다. 중국은 글로벌 명품업계의 핵심 고객층을 보유한 시장이지만, 부동산 침체와 내수 부진이 장기화하면서 명품 소비가 위축되고 있다. 여기에 세금 부담 증가, 자국 브랜드를 선호하는 ‘궈차오’ 분위기까지 확산되며 해외 명품 브랜드의 입지는 예전 같지 않다. 일부 브랜드는 현지 소비자 반발과 불매 압박에도 직면했다.중동 시장도 예외가 아니다. 그동안 중동은 높은 구매력을 바탕으로 명품업계의 성장 지역으로 꼽혔지만, 전쟁과 지정학적 리스크가 이어지며 소비 심리가 얼어붙었다.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명품 소비는 더욱 신중해지는 흐름이다.반면 로레알은 달라진 소비 심리의 수혜를 보고 있다. 소비자들은 수백만 원대 가방이나 의류 대신 립스틱, 향수, 스킨케어 제품처럼 비교적 부담이 작은 상품으로 만족감을 얻고 있다. 이른바 ‘립스틱 효과’가 뚜렷해진 것이다.로레알은 고급 화장품부터 대중 브랜드까지 폭넓은 제품군을 갖추고 있어 경기 변화에 대응하기 쉽다는 평가를 받는다. 가격대가 다양하고 소비 주기가 짧아, 고가 명품보다 수요 방어력이 강하다. 올해 2분기에도 로레알은 주요 사업 부문과 지역에서 고른 성장세를 보였다.이번 시총 역전은 단순히 두 기업의 주가 등락을 넘어 소비 트렌드의 변화를 보여준다. 과시형 명품 소비의 시대가 숨 고르기에 들어간 사이, 합리적 가격대에서 만족을 주는 뷰티·향수 시장이 새로운 승자로 떠오르고 있다. 명품업계의 왕좌는 여전히 화려하지만, 지금 시장이 선택한 것은 거대한 쇼핑백보다 작은 립스틱 한 개에 가까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