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미국 SMR 공급망 장악…에너지 패권 도전
일본 정부가 트럼프 미 행정부와의 관세 협상에 따른 후속 조치로 차세대 소형모듈원자로(SMR) 사업에 대규모 자본을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전체 대미 투자액 5,500억 달러 중 약 10%를 상회하는 650억 달러, 우리 돈 약 100조 원이 미국의 원전 증설 프로젝트에 할당된다. 이번 결정은 1979년 스리마일섬 사고 이후 수십 년간 정체되었던 미국의 원자력 정책을 완전히 뒤바꾸는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미국의 SMR 공급망에 깊숙이 참여하며 차세대 에너지 주도권을 확보하겠다는 구상이다.양국 정부는 이달 초 온라인 협의를 통해 구체적인 투자 틀을 논의했으며, 이는 올여름 발표될 일본의 대미 투자 사업 계획에 정식 포함될 예정이다. 주요 투자 대상으로는 미국 GE 베노바와 일본 히타치가 합작 추진 중인 SMR 사업에 약 400억 달러가 우선 검토되고 있다. 또한 혁신 기술을 보유한 뉴스케일파워의 프로젝트에도 최대 250억 달러가 투입될 것으로 관측된다. 첫 번째 실질적인 사업지는 미국 테네시주가 유력하며, 미 당국은 이미 관련 인허가 절차를 신속하게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미국이 이처럼 원전 정책의 대전환을 꾀하는 배경에는 인공지능(AI) 산업의 폭발적 성장으로 인한 전력 수요 급증이 자리 잡고 있다.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량이 향후 5년 내 현재의 수배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면서, 전력 공급 부족이 중국과의 AI 패권 경쟁에서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작용했다. SMR은 대형 원전에 비해 설치가 용이하고 데이터센터 인근에 직접 배치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어, 아마존을 비롯한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도 이번 미·일 연합의 행보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은 이번 협력이 양국이 함께 SMR 공급망을 구축하고 관련 기술을 세계 시장에 수출할 최적의 기회라고 평가했다. 미국은 2050년까지 원전 발전 능력을 현재의 4배로 확대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소형 원자로 승인 절차를 대폭 단축하는 대통령령을 시행하는 등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일본의 자본은 이러한 미국의 인프라 확충 계획에 핵심적인 동력이 될 것이며, 양국은 이를 통해 러시아와 중국이 장악해온 기존 원전 시장의 판도를 단숨에 뒤집겠다는 전략이다.현재 전 세계 SMR 시장은 중국과 캐나다 등 일부 국가에서만 실제 건설이 진행 중인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특히 지난 10년간 전 세계에 건설된 대형 원전의 대부분이 중국과 러시아 제품이라는 점은 미국과 일본에 큰 압박으로 작용해 왔다. 양국은 이번 공동 투자를 통해 인력 양성과 기술 표준화 측면에서 반격의 기틀을 마련하고, 2050년까지 미국 내에만 300기 이상의 SMR을 건설한다는 장기 비전을 실현해 나갈 방침이다.일본 측이 우려했던 원전 사고 시 배상 책임 문제에 대해서도 미국 정부는 명확한 선을 그으며 안심시키는 분위기다. 미국 고위 관계자는 이번 프로젝트가 철저히 미국의 사업임을 강조하며, 일본 측에 배상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입장을 공식화했다. 최종 협상 과정에서 이러한 법적 장치들이 구체화되면 일본의 투자는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미·일 양국은 이번 에너지 동맹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넘어 기술 안보 측면에서도 강력한 결속력을 확인하며 차세대 원전 시장의 표준을 선점해 나갈 계획이다.